“저는 평화를 믿습니다. 하지만…” 88세 호주 한국전 참전용사 조니 바인햄, 한국전 당시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유튜브 영상 제작

Johny Bineham

한국전 참전 용사 조니 바인햄 씨 Source: SBS Korean

1953년 19세의 나이로 한국 전에 참전한 조니 바인햄 씨는 당시 직접 촬영한 사진과 동료들로부터 수집한 자료들을 모아 한국전을 설명하는 1시간 30분 분량의 동영상을 2년에 걸쳐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했다. 바인햄 씨는 편향없이 한국전을 전하고 싶어 동영상에서 인물의 목소리를 제외하고 음악과 소리, 텍스트로만 한국전을 설명했다.


진행자:  오는 6월 25일은 6.25 발발 72주년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우리 민족의 상잔 한국전이 발생했습니다. 호주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에 1만 7000여 명을 파병했는데요. 이 가운데 340명이 전사했고, 1216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지난 2021년 기준 호주 보훈부에 따르면 한국전 참전 용사들은 현재 호주 내에서 1900여 명이 생존하고 있고, 이분들의 평균 연세가 90.8세 이신 걸로 파악되고 있는데요. 짐작하시듯이 대부분 지병과 고령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 한 호주의 한국전 참전 용사가 작년 유튜브를 통해 자신과 동료들이 보유하고 있던 과거의 사진과 동영상을 이용해 한국 전을 설명하는 1시간 30분의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2년에 걸쳐 직접 영상까지 편집한 주인공은 한국전 참전 용사 조니 바인햄 씨인데요. 89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유지하며 전우들을 대표해 한국전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조니 바인햄 한국전 참전 용사 나혜인 피디가 만났습니다.


한국전 참전 용사 조니 바인햄

  • 1933년 출생으로 현재 88세
  • 1952년 호주의 한국전 참전 의용군인 K-Force에 18세에 입대
  • 1년 훈련 후 한국전 투입, 이후 인도네시아 내전, 베트남전 등도 참전 
  • 유튜브 채널로 한국전 당시 직접 촬영한 사진과 수집한 영상 담은 동영상 공개

나혜인 피디: 한국전 참전 용사이신 조니 바인햄 선생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니 바인햄: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혜인 피디: 먼저 선생님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조니 바인햄: 네. 제 이름은 조니 바인햄입니다. 저는 1933년 11월 1일에 태어났습니다. 올해 생일이 되면 89세가 되는군요. 감사하게도 건강이 아주 좋습니다. 제 주치의는 80세 이상 가운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은 제가 유일하다고 하더군요. 저는 기력을 다 하지도 않았고 돋보기를 쓰지도 않을 정도로 상태가 좋습니다. 하지만 많은 한국전 참전 용사들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상황이죠. 제 경력을 본다면, 가족들은 제가 대학에 가길 원했지만 전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엔지니어가 되라고도 했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았어요. 저는 모험을 원했거든요. 그래서 어느 주말에 말 그대로 집을 떠나 시드니에 왔어요. 그리고 군대가 결국 모험을 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 자원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18살이었는데 21살 전에 군대에 입대하려면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제 나이를 22살로 올려 적었지요. 그때는 한국전에 참전할 남자들이 부족했기 때문에 다들 게이치 않았어요. 나이가 약간 많든 적든 건강하기만 하다면 조금도 상관하지 않았어요. 전쟁이 끝나고는 항상 예술을 즐겼기 때문에 몇 년 동안 예술 학교에 다녔어요. 그러다가 사업도 하고 조각을 하고 보석 관련 일을 했죠. 하지만 계속 모험을 좋아해, 재 입대한 뒤 인도네시아 내전과 베트남 전에도 참전했어요. 제대 후에는 계속 보석 사업을 했고, 중의학을 공부해 은퇴할 때까지 진료를 했습니다. 그리고 영상을 제작하고, 지금까지6, 7권의 책을 썼어요. 이것이 제 경력입니다.
저는 모험을 원했거든요. 그래서 어느 주말에 말 그대로 집을 떠나 시드니에 왔어요. 그리고 군대가 결국 모험을 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 자원했습니다.
나혜인 피디: 한국 전이 발발한지 70년이 넘었습니다. 아까 전쟁에 간 것은 순전히 모험을 위해서라고 하셨는데요. 실제 전쟁은 어땠나요?

조니 바인햄: 군인이라면 싸워야 하죠. 그것이 가장 큰 모험이었죠. 사람들이 죽고 부상을 당했어요. 만약 운이 좋아 처음 몇 달 동안 살아남았다면 대게 계속 살아남을 좋은 확률이 있어요. 왜냐면 어린 병사들이 주로 죽거든요. 신병들이 오래된 군인들보다 빨리 죽죠. 하지만 모험이었어요. 왜냐면 군대에서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직책들을 맡게 되거든요. 비행기와 탱크, 배, 총을 가지고 있었고 많이 운동을 하고 뛰어 다녀서 몸을 유지할 수 있었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았어요. 물론 한국에 가자마자 삶이 어떤 것이라는 것은 바로 깨달았어요. 그리고 빨리 남자가 되었어요. 많은 책임이 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많은 것들이 달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모두가 같은 일을 하고 있고, 사소한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기본적으로는 승리하고 싶고 전투에서 적을 무찌르고 이기는 것이죠. 그래서 그 목적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거예요. 생각하거나 철학을 할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그냥 주어진 일을 해야만 했어요.
Johny Bineham
1951년 18세였던 한국전 참전 용사 조니 바인햄 씨 Source: Johny Bineham
나혜인 피디: 당시 한국에 대해 어떤 것들을 가장 많이 기억하세요?

조니 바인햄: 작은 배를 타고 일본에서 부산에 도착했을 때 가장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트럭에 서서 보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도시를 내려다보는데 정말 추웠어요. 비가 오지는 않았는데 암울했고 햇볕이 없었어요. 전체 도시가 평평했죠. 건물이 없었어요. 모두가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재료를 사용했는데, 종이 널빤지 같은 걸로 피난처를 만들었더군요. 저 너머에 있는 전체 도시를 볼 수 있었는데 큰 건물은 전혀 없었어요. 충격적이었어요. 정말 힘든 시간이었던 거예요. 빠르게 깨닫게 되는 거죠. 전쟁이 얼마나 추악한 일인 것인지요. 특히 민간인들에게요. 군인들은 먹을 수나 있었죠. 언제나는 아니지만 대부분은요. 하지만  민간인들은 그렇지 못했죠. 어떤 전쟁이든 민간인, 나이가 많든 젊든 민간인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어요. 그런 것들을 보면 만감이 교차하죠. 웃거나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 없어요. 모두가 심각하게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저는 기차에 태워져 전방으로 보내졌어요. 많은 탱크와 트럭, 벽을 날릴 수 있는 것들이 있었어요. 온통 검은색과 회색의 사물들 뿐이었어요.  한국은 지금 많이 변했죠. 온통 초록이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파괴된 것 같았고, 모든 것이 갈색과 회색뿐이었어요. 아직도 기억할 수 있어요.
(부산은) 암울했고 햇볕이 없었어요. 전체 도시가 평평했죠. 건물이 없었어요…종이 널빤지 같은 걸로 피난처를 만들었더군요.
나혜인 피디: 한국전 이후 전투를 끝내지 않으셨어요. 계속 호주 군의 일원으로 다른 전쟁에 참전하셨는데요. 계속해서 전쟁에 참전하신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으셨나요?

조니 바인햄: 또다시 모험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다른 것이 허용돼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지휘관이었을 때 저는 좀 힘들었습니다. 부하들을 점프하게 하고 뛰게 하고 밧줄을 내려가게 하고 물 속에 들어가게 하죠. 스스로를 계속해서 밀어붙여야 하는 거죠. 그러면 ‘지금 왜 이걸 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드는데요. 저는 이런 삶을 좋아하는 거라는 걸 알았죠. 이런 흥분을요. 이런 이미지를요. 저는 다른 것들을 시도하는 것이 좋아요. 지금도 그래요. 그래서 이 나이에 최신 기술을 익히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죠. 그러니 저는 삶에서 여전히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모험을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권하진 않지만 제 본성이 그런 거죠. 군대에 입대해서 했던 모든 것을 즐겼고, 군대는 제게 대학이었어요. 삶 이상이었죠.
Mr Johny Bineham in the Korean War.
1953년 한국전 당시 조니 바인햄 씨 Source: Johny Bineham
나혜인 피디: 최근에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영상을 제작하고 계시는데요. 선생님의 채널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죠.

조니 바인햄: 글쎄요. 약 250개에서 260개의 영상을 올렸어요. 많은 것들에 대한 영상이죠. 처음에는 초기 역사에서 일어난 다른 것들을 다룬 역사 이야기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13세기에 전멸한 카타르라는 그룹의 철학에 대해서 하기 시작했죠. 관심 있는 분들이 큰 반응을 보였어요. 그래서 역사에 대한 책을 더 읽고 더 많은 영상을 올렸고 여러분들이 댓글에서 더 많은 얘기를 해 달라고 남겨주셨죠. 프랑스에 여행을 갔을 때는 그에 따른 영상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한국전에 있었을 때는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어요. 영상은 없었지만 사진을 찍었어요. 나중에 이 카메라는 도둑 맞았지만요. 그리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있을 때는 비디오카메라를 가지고 다녔어요. 그래서 영상을 많이 찍었고, 그때 영상들을 유튜브에 올렸어요. 당시에 저는 영화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할 수 있을 때마다 종종 카메라를 꺼내 놓고 찍었어요. 그런데 그게 이제는 역사의 일부가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당시 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었던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그것이 이제는 역사적인 것이 됐으니까요. 그때 당시에 찍었을 때는 몰랐지만요. 당시에는 그냥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는다는 것뿐이었는데 50년 후에는 그게 역사의 일부가 된 거예요. 그렇게 찍은 것들이 유튜브에 올려져 있어요. 거기에는 저에 대한 모든 것들이 조금씩 있다고 해야겠네요. 저는 이 작업이 매우 좋고, 실제로 재미있어요. 
당시에 저는 영화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할 수 있을 때마다 종종 카메라를 꺼내 놓고 찍었어요. 그런데 그게 이제는 역사의 일부가 되었더라고요.
나혜인 피디: 그 가운데 선생님께서 만드신 을 봤습니다. 많은 과거의 사진과 동영상이 들어간 영상이었는데요. 역사적으로도 귀중한 사료라고 생각됩니다. 왜 이 영상을 제작하게 되셨나요?

조니 바인햄: 한국 전에 대한 대부분의 영상이 영어로 된 미국식이라는 것에 늘 답답해했어요. 물론 그 영상은 미국과 영국에 편향된 영상이었죠. 한국에 대한 영상은 많지 않았어요. 콜롬비아에 대한 영상은 전혀 없었고요. 태국 군에 대해서도 그랬죠. 전혀 영상이 존재하지 않아요. 의료팀을 보낸 덴마크나 스웨덴에 대한 시각적 자료도 전혀 없어요. 한국 전에는 총 22개국이 참전했어요. 그렇지만 이 국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요. 호주도 여기에 포함되고 뉴질랜드도 그렇죠. 그래서 프랑스 아이든, 독일 아이든, 한국 아이든, 중국이나 일본, 호주나 뉴질랜드 아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관계없이 보기만 하면 한국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어요. 어떤 국가는 당시에 영상을 많이 찍었죠. 저는 2년 동안 이를 살펴봤어요. 30분 영상 중에서 5분만 추려냈죠. 그런데 저는 참 운이 좋았어요. 왜냐면1955년 이전에 제작된 영상이나 사진은 호주 저작권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한국 전에 대한 모든 자료를 저작권 법에 대한 우려 없이 쓸 수 있었던 거죠. 주로 미국인이 말을 하거나, 영어를 하고 호주인이 말을 하고 하면 목소리의 악센트가 편향을 유도하잖아요. 이미 이 영상이 미국이나, 호주, 영국에 편향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저는 어떤 편향을 바라지 않았어요. 그래서 클래식 음악이나 한국의 아리랑 같은 곡으로 배경 음악을 쓰고 목소리 대신 카드에다 설명하는 글을 영어로 썼어요. 만약 프랑스에서 이 영상을 쓰고 싶다면 이 영어 카드가 나오는 부분에 프랑스 목소리를 입히면 되겠죠. 이 영상은 한국 전에 참전한 모든 보병들을 위한 것입니다. 제 말은 모든 보병이 누구를 위해 싸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면 군인들은 정치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죠. 전쟁터에서는 단지 싸울 뿐입니다. 엄격한 비즈니스에요. 그 당시에는 정치가 없습니다.
이 영상은 한국 전에 참전한 모든 보병들을 위한 것입니다. 제 말은 모든 보병이 누구를 위해 싸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면 군인들은 정치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죠.
Johny Bineham
한국전 휴전 후 중국 군인들과 조니 바인햄 씨 Source: Johny Bineham


나혜인 피디: 3번의 전쟁에 참전하셨고 셀 수 없는 전투를 하셨습니다. 많은 사회적인 변화와 개혁을 보아 오셨고요. 이 영상을 통해 후 세대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지요?

조니 바인햄: 한국이 북한의 침략을 받고 이후에는 중국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이 전쟁을 지휘한 것이 스탈린이었습니다. 러시아였죠. 김일성에게는 남한을 공격하라고 날짜를 주고는 중국의 마오에게는 내가 지시를 내릴 때까지 공격하지 말라고 했죠. 러시아가 중국에 탄약과 무기를 공급했습니다. 이렇게 스탈린이 배후를 조정한 것입니다. 북한과 중국은 러시아의 꼭두각시가 돼 러시아의 조정을 받았습니다. 독재 정권 러시아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스스로 운영하는 자주 민주 국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 있습니다. 자주 국가를 침범했던 과거 러시아의 비슷한 시나리오가 오늘날의 푸틴에 의해 다시 실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는 한국이 북한과 러시아를 자신의 영토에 초대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국 영토를 파괴하라고 결코 러시아를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는다면 이 역사는 그대로 다시 반복된다는 것을 놀랍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평화를 믿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격을 받는다면 스스로와 가족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조국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역사가 보여주 듯 죽음보다도 못한 삶을 살게 되도록 추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우 매우 전쟁을 반대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국가는 약한 국가를 공격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다 같이 일어서야 합니다. 이상적으로는 다른 국가들이 같이 일어서서 도와야 합니다. 22개국이 한국을 도왔던 것처럼 나토와 다른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더욱 강하게 돕고 있는 것처럼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를 끝내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독재와 강한 사람에 맞서 국민이 선출하는 사람들이 국가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한국과 오늘 날 우크라이나를 통해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살아남기 위해서는 싸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화를 믿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격을 받는다면 스스로와 가족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조국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역사가 보여주 듯 죽음보다도 못한 삶을 살게 되도록 추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Koean War Veteran Mr Johny Bineham
한국전 참전 용사 조니 바인햄 씨 Source: SBS Korean
나혜인 피디: 한국전 참전 용사 조니 바인햄 선생님 오늘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니 바인햄: 감사합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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